추천여행지

그리스 에피루스

여행한사람 2009. 6. 6. 15:14

주간동아 08.5.27 녹색여행지 BEST 10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2008/05/21/200805210500041/200805210500041_1.html

 

 
2008.05.27 637호(p18~23)
 
[별책부록|추천 녹색 여행지 BEST 10]
그리스 에피루스 축복받은 땅과 사람들
自然食의 숨겨진 보물창고
 
 

에피루스의 집들은 돌로 지어졌다.

녹색으로의 여행에서 자연식 먹을거리로 충만한 여행지를 빼놓을 수 없는 법. 그리스 아테네에서 자동차로 약 6시간이 걸리는 에피루스는 그리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울창하고 은밀하며, 무엇보다 ‘맛있는’ 땅이다.

에피루스(Epirus)로 가는 길은 거대한 산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여정(旅程)이다. 올리브나무 경작지와 걸프해를 지나 자동차는 한계령에 버금가는 ‘숲의 심장’으로 미끄러진다. 아테네에서 6시간. “이곳이 에피루스의 초입”이라는 가이드의 말에 눈을 뜨니 사방이 온통 울창한 숲이다. 에피루스는 우리나라의 치악산 자락과 비교할 만하다. 넓지 않은 도로는 완만한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장대한 풍경을 가로지른다.

마침내 도착한 첫 여행지, 자고리(Zagori)에서 탄복하고 말았다. 해발 800m의 고지대, 산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풍경 너머로 수십여 채의 돌로 만든 집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길 역시 오돌토돌한 돌이 깔려 있어 자동차 진입이 안 된다. 여행자는 가방을 어깨에 지고 호텔까지 걸어가야 한다. 돌길은 평평하지도 넓지도 않아 바퀴 달린 가방을 무작정 끌 수도 없다. 돌로 만든 담, 돌로 만든 집, 돌로 만든 길을 걸으면서 마을 광장에 박혀 있는 수령 800년이 넘은 버즘나무를 바라본다.

버즘나무 한쪽 그늘과 벗하며 세워진 자그마한 레스토랑에서는 그리스 전통악기인 ‘부주키’의 선율이 새어나온다. 레스토랑에서는 영국 여행객 일행의 소박한 식사가 한창이다. 열 명 남짓한, 예순에서 여든가량의 ‘어르신’들이다. 유럽에서조차 ‘비밀의 땅’이라 불리는 에피루스에는 전세버스를 탄 단체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다.

막대를 휘둘러 호두를 따는 에피루스의 노인.

에피루스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전후부터다. 강수량은 풍부하지만 고산준봉이 많고 농경지가 적어 대부분 이동목축을 생업으로 삼았다고 한다. 문명의 바람이 채 당도하기 어려운 험준한 지형 탓에 이곳은 오랫동안 고립돼 있었다. 그러다 14, 15세기경 로마제국과 비잔틴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에피루스에는 모두 47개의 작은 마을이 산자락 사이사이에 안겨 있다. 폭설과 추위 때문에 많은 이들이 도심으로 떠나기 때문에 겨울에는 거주인의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호텔에 짐을 부리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돌담 사이사이엔 블랙베리, 포도, 호두나무가 심어져 있다. 안내를 맡은 가이드가 손수 따준 열매들은 달고도 고소하다. “여행자들은 그리스 하면 옥색 바다와 해변, 코코넛나무만 생각하는데, 그리스 전체의 90% 이상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산의 90% 이상이 해발 2000m가 넘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에피루스는 이러한 그리스가 품은 울창한 산림의 대표 지역으로, 깊은 숲과 계곡이 셀 수 없이 많아 당도 높은 과일과 허브가 지천에 널려 있다고 한다. 에피루스에 간다고 했을 때 아테네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오겠다”며 부러워했던 의미를 이제야 알겠다.

고령의 키키차 할머니를 대신해 ‘키키차스 파이’를 운영하고 있는 콘스탄티노스가 키키차 파이를 내보이며 웃고 있다.

실제 에피루스 지역의 식단은 어느 곳을 가도 신선함과 싱싱함이 그득했다. 우리 음식에서 마늘만큼이나 그리스 음식에 흔하게 들어가는 오레가노와 민트는 깊은 숲 속에서 채취한 것이기에 맛이 달 수밖에 없었고, 여기저기 널려 있는 호두와 무화과, 복숭아, 밤 등으로 만든 잼은 무척 고소했다. 산양의 젖으로 만든 페타치즈 역시 풍부한 맛을 자랑했다. 이곳 산양들은 해발 800~1500m를 자유롭게 걸어다녀 운동량이 많다고 한다. 닭 돼지 소 양 고기로 만든 요리도 최고급 갈빗살처럼 보드라웠는데, 이 역시 축복받은 에피루스의 자연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100여 마리의 양떼를 지키는 양치기 개와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에서 막대를 휘둘러 호두를 따는 노부부, 마을 어귀에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가 빚어내는 에피루스의 풍경은 그토록 맛난 먹을거리와 더불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에피루스 여행은 결코 만만치 않다. 아테네 같은 대도시와 달리 교통수단이 완벽하지 않아 차를 빌리거나 가이드를 고용해야 한다. 하지만 힘들게 한 여행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법이다. 무엇보다 자연식을 선보이는 크고 작은 식당들이 즐비해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 뜨거운 재와 숯으로 구워낸 토끼요리와 기름기 없이 포근포근한 야채파이로 유명한 미칼리스(Michalis·(30) 26530 71632), 생후 1년 반 미만의 어린 양으로만 조리해 양 특유의 누린내가 없이 보들보들 맛있는 양고기로 유명한 니코스 · 이오일리아(Nikos · Ioylia·(30) 26530 41893) 등 소박하면서도 맛난 식당이 셀 수 없이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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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추천 녹색 여행지 BEST 10]마음의 때 씻고 그곳에 풍덩! Travel to Green Parad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