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방송국 성우인 고흥숙(74)씨는 2000년 유방암 1기 진단을 받은 뒤 수술과 고된 항암치료 과정을 이겨내고 10년째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고씨는 16일 “지난 세월 환자임을 잊고 삶의 다른 부분에, 다른 일에 열중한 것이 암 극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1999년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던 김형래(42)씨 역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성공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의료진을 굳건히 믿고 지침을 잘 따른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대형 항공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다.
암이라고 하면 죽음의 공포를 떠올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 많은 암 환자들이 10년 이상 장기 생존하는 시대가 됐다. 세브란스병원 연세암센터(원장 정현철)가 1995년부터 2000년 사이 암 진단 환자 2만8838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34.9%(1만73명)가 10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 발병 연령이 점차 젊어지고, 조기 검진이 늘어나고, 관련 분야를 연계한 다학제 치료가 확대되는 것 등이 생존 기간을 늘리는 원인으로 꼽힌다.
암은 대개 진단 후 5년간 재발이나 전이 없이 살면 완치로 본다. 5년 생존율은 미국의 경우 60%, 우리나라는 50%에 이른다. 하지만 국내 의료기관에서 암 환자 10년 생존율이 공개된 적은 없다. 정현철 원장은 “0기(전암 단계)에 발견한 이들은 93%, 1기는 75.8%, 3기 30.6%, 4기 이상도 7.2%가 10년 이상 살고 있다”면서 “환자들은 치료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제는 오래 생존하는 암 치료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위한 정책적, 사회적 지지 시스템은 따라주지 못하는 현실이다. 5년을 넘어 10년 이상 살고 있는 이들도 늘 암 재발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지만 ‘완치됐다’는 의료적 기준에 따라 제도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세암센터는 이날 국내 처음으로 10년 이상 생존한 암 치료자들을 위한 자조 모임 ‘새누리 클럽’을 발족했다.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고 새로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에게는 투병 경험 등을 전수해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기 위함이다. 이날 발족식에는 10년 이상 암을 이겨낸 200여명이 초청받아 축하와 격려를 받았다.
정 원장은 “10년 이상 생존자들은 단순히 질병만을 이겨낸 것이 아니라 투병 과정에서 심리적, 정서적,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의료적 문제까지 모두 훌륭하게 극복한 승리자들로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